옛 회사 후배와 추억을 나눈 밤
갑작스레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해져 가고 있는
삭막한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매일 아침 무겁디무거운 정장을
전투복마냥 갖춰 입고
하루하루를 나와 전우처럼 함께 했던
옛직장 후배 현석(*가명)의 연락이 온 것이다.
'선 대리님 저 교토 출장 가요!
하루 밖에 못 있지만 술 한잔해요!'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연락은 쭉 하고 지냈지만
그에겐 여전히 난 대리다.
얼굴을 본 지가 정말 오래되었다.
한국에서도 잘 못 봤던 옛 동료를
일본에서 보게 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기로 한 일요일,
나는 평소보다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옷을 입고
간사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내가 일본에 입국할 때만 하더라도
공항이 그리 붐비진 않았는데
코로나에서 점차 해방되고,
해외여행이 다시 활발해지니
간사이 공항도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저 멀리
오랜만에 봐도 하나도 안 어색한 얼굴 하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온다.
'형님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린 보자마자 웃음만 지었다.
'일단 우리 집 가서 옷부터 갈아입고 돌아다니자'
'-아니요, 저 일부터 끝내고 속 시원하게 놀래요.
출장처에 미팅만 하면 돼요'
무슨 일요일에 미팅이라니.
일본이나 한국이나 일하는 졸병들만 죽어난다.
공항에서 교토까지 가는 기차에서
우리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고
교토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잠시 헤어졌다.
그리고 현석에게 연락이 온 건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카톡엔 내용이 없었지만
얼마나 치열한 테이블 토킹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애써 묻지 않았고
한 시간 후에 우린 다시 만났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봐도
진이 빠져있는 게 느껴진다.
만나자마자 술타령하는 걸 보니
밥은 패스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바로 내가 좋아하는 술집으로 안내했다.


기분 좋게 한 잔을 시작하며
미팅 때 상대 일본과장의 꼰대스러움과
부하직원들의 느릿느릿한 일 처리 속도
예상과는 다르게 흘렀던 계약사항 등
이러저러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우리는 취해갔다.
'사실 형이 너무 그리워요.'
여간해선 빈말을 잘 안 하는
후배의 한마디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치? 바람막이 없어지니까 아주 그냥 죽겠지? ㅋㅋ'
나는 장난스레 받아쳤지만
후배의 얼굴엔 진지함이 묻어있었다.
난 아직도 후배의 처음을 기억한다.
힘겹게 인턴을 견디고
수십 대 1을 이기고 온 신입이
어느 부서보다 실무가 중요한
우리 팀에 배정되어
빈 책상에서 무얼 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했던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나도 그랬으니까.
'맞아요. 진짜 혼자 일하는 기분이에요..
밑에 애들이 충원되어도 정도 안 가고
책임질 일은 많아지고,
위에선 자존감 깎아내리는 말만 쏟아내고..
미치겠어요..'
사실 그 삭막하디 삭막한 A 회사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님을 안다.
그래서 후회없이 사표 던지고 나온게
나였으니까.

'저는 형님이 너무 부러웠어요.
그만 둔 게 부러운 게 아니라,
걔네들한테 안 지고 나갔잖아요..'
후배의 한마디에 나는
술 한 잔을 더 들이킨다.
후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내가 이겼으면 난 지금 아침저녁으로
강남대로 테헤란로를 한눈에 살피며
퇴근 후에 돈 걱정 없이
그럴 듯한 강남의 와인바에서
비싼 와인 까먹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그 때 길지는 않았지만 많이 배웠어요.
형님이 일 할 때 했던 조언이 최고였던 거 같아요'
'ㅋㅋ 내가 뭔 말을 했는데'
'눈치 보는 척하는 게 능력이라고 했잖아요'
답을 듣자마자 생각이 난다.
그 말을 했던 날의 날씨와
그날의 사무실의 분위기까지 기억이 난다.
현석은 그날따라 팀장에게
유난히 심하게 혼나고 있었다.
이유는 대충
후배가 일을 할 때
너무 심하게 상사 눈치를 본 탓에
잘 못 하달된 일을
무리하게 진행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회의실로 후배를 데리고 와서
생각나는 대로 조언을 했다.
'눈치를 보는 것은 단순 기본 소양이고,
속으론 눈치를 안 봐도
보는 척을 하는 것이 진짜 능력이야'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한국에서 성공적인 회사 생활을
하기위해 가장 필요한 건
'자기 업적에 대한 과장'과
'강한 자에게 나는 널 존중한다는 걸
보여주는 능력'이다.
강한 사람에게 강으로 대응하려면
아싸리 이 꽉 깨물고
이길 각 잡고 제대로 싸우던가
그게 아닐 바에는
'나는 너를 강자로 생각해'라는 걸 보여줘서
번잡스러운 싸움을 피하는 것이 편하다.
어차피 그들은 그러려고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니까.

그걸 해내는 것이 '눈치를 보는 척'이다.
사실 흔히들 말하는 '눈치'는
인턴 때 마스터해야 한다.
이미 그걸 마스터했기 때문에
3개월간의 인턴 경쟁에서 이겨내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인턴 단계에서 걸러진다.
그런데 '눈치를 보는 척'은 다르다.
내 자존감을 위해서
내 속엔 단단한 기둥은 간직해야한다.
내 판단에 대한 자존감은 가지고 있어야한다.
멍청하고 고집센 상사가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업무를 시킨다면
일단 내가 생각하는 바 대로 일을 하고
상사에겐 들키지 말아야한다.
그래서 연기가 필요하다.
일은 내가 생각한대로 하되,
과정이나 결과는
상사가 원하는 모양새로 한 것처럼
연기를 해야한다.

사실 나는 내심 속으로 부끄러웠다.
30대 초의 어린놈이 뭘 안다고
회사 몇년 먼저 들어갔다며
생각나는 대로 말했던 그 조언이
후배에겐 아직까지
가슴에 담고 살만한 조언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결과적으로
나는 회사를 나왔고
후배는 다니고 있으며,
훌륭하게 버티고있다.
나름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탄탄하게 생활하고 있던
나는 무소속
입사 때부터 찍혀서
매일매일 인격모독에 시달리며
스트레스에 탈모까지 생겼던 현석은
내년에 진급을 앞두고 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이란 게.
우리는 그렇게 온갖 추억을 되새기며
교토의 어느 골목
허름한 이자카야에서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