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생일을 맞이하다.

평소답지 않게 늦잠을 자버렸다.
평소가 아니라서 그랬던 걸까
 
5월 30일
이번 년에도 어김없이 
내 생일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기어코 또 한 살이 추가되다니..
 
생일을 챙기는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혼자 맞이하는 생일은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뭐랄까..
 
무튼 좀 그런 게 있다.
 
하지만 자는 사이에 와있는
친구들의 축하카톡과
모닝콜 겸 걸려온 가족의 축하 전화로 
심히 우려했던
찐따같은 아침을 피할 수 있었고,
오히려 반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내가 다니는 어학원은
지각하면 무조건
다음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룹을 지어
대화를 하는 수업이 주이기 때문에
도중에 합류하면 
수업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자마자 택시를 잡아탔다.
 
참나..
 
일본에서 택시라니.
20대 때의 나에게
가히 자랑할만한 업적이다.
 

아무리 30대의
탄탄한 지갑이더라도
일본의 택시는 후달리긴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택시를 잡은 건 성공이었으나
 
그럼 뭐해.
 
미터기도 렉 걸린 듯 빠르게 올라간다.
동시에 내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생일이니까 좀 봐달라고
챗 gpt에 입력하는 것 마냥
미터기에 입력하고싶었다.
 
얼마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천 엔짜리 한 장과
500엔 동전 몇 개 내고 내렸다.
 
속이 쓰렸다.
 
이때부턴지 모르겠다.
오늘은 돈 쓰는 날이란 걸
자각한 순간이.
 
그렇게 어찌저찌
수업에 잘 참석할 수 있었고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집에 다시와서 잤다.
생일이고 뭐고 어차피 딱히 할 것도 없는데
날씨도 흐려서 그런지
오히려 낮잠이 참 잘 왔다.
 
깨어보니 어둑어둑한 저녁이다. 
밥은 먹어야하니 편의점이나 가서
도시락이나 사 올까하다가
그래도 오늘 생일인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자의식이 갑자기 일어났다.
 
그래서 향했다.
 

나의 놀이터......
요도바시로.
 
평소라면 바로
지하 식품매장으로 직행했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무언갈 사서 들어가는 날이다.
 
그것이 생일이니까.

 
그리고
이미 돌아버린 내 눈에 들어온 녀석..
(이쯤되면 생일을 노린거다 나란 녀석)
 

 
MDR-EX510SL
 
내가 정말 가지고 싶었던
모니터링 이어폰이다.
 
사실 일본에 올 때
사고싶었던 목록을 쭉 적었는데
상당히 상위포지션에 자리잡은 녀석이다.
 
한국에서는 못구하고 직구로도 그 가격이
버즈, 에어팟을 상회하는
출시한지 10년도 더 지난
고전 유선 이어폰이다.
 
일본에서밖에 못구한다.
 
'하... 살까.. 말까...'
 
진짜 한 30분을 앞에서만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잡아챘다.
 
생일이니까.
 
그리고
이건 당근으로도 남는 장사할 수 있다는
심적 합리화의 승리랄까.
 
그렇게 힘겹게 결정한 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프라모델 코너.
 
'일본에 왔으면 프라모델 하나정도는
조립해보고 가야하는거 아닌가?'
 
라는
이상한 집착(?)으로
구경을 시작했다.
 

'이.. 인기 상품인가?...'
 
뭔지 모를 모델이 산처럼 쌓여있다.
 
사실 난 이 분야를 잘 모른다. 
너무 어렵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
 
프라모델을 집중해서 만드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들어갔지만
역시 관심사가 먼 곳은 어렵다.
 

다른건 모르겠고, 아이 하나가
수십개의 뽑기기계 앞에서
서성이는게 너무 귀여웠다.
 
정말 살 마음으로 갔었지만
이건 무리다 싶어서 작전상 후퇴 결정
 
그리고
마지막 나의 일정은
나만의 안식처 식품코너로
 
고고
 

다내꺼.
 
오늘 생일이니까
먹고싶은거 다 집어버려.
 

시간이 늦어서 심야할인
덴뿌라, 가라아게 반 값
개이득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밤이 늦었다. 
 
오자마자
부랴부랴 간단하게 배부터 채우고
바로 이어폰부터 꺼내서 
혹시모를 다.. 당..근행을 위한
영수증과 품질 보증서부터 찍어놓고^^
 

생일을 핑계삼아
사고싶은 걸 샀으니 만족쓰..
 
생각보다 생일을 우울하지않게
성공적으로(?) 잘 넘겼다. 
 
그렇게
도시락과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
 
 
아.
 
 
그리고
프라모델 안샀으니까.
 
대신
 
다른걸 좀 샀다.
 

생일인데
에어포스 하나 정돈
괜찮잖아?
 
생일 끝.